본문 바로가기

벌(BEE)

각국의 벌 퇴치법

각국의 벌 퇴치법

 

 

각국의 벌 퇴치법

벌은 꿀과 밀랍, 수분 매개라는 큰 혜택을 주었지만 동시에 날카로운 침으로 인간에게 두려움을 안겼다. 인류는 꿀을 얻고자 벌과 가까이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쏘임이라는 고통을 경험했다. 따라서 전통 사회에서 벌 퇴치법은 단순한 “제거 기술”을 넘어, 생계를 위해 벌을 다루면서도 그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생존의 지혜였다. 중요한 점은, 많은 문화권에서 벌은 신성한 존재로 여겨져 무분별하게 죽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은 “쫓아내되 공존하는 방식”을 추구했으며, 이러한 태도가 다양한 지역의 전통적 퇴치법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고대 이집트: 연기와 향의 치밀한 활용

고대 이집트는 양봉의 발상지 중 하나였다. 피라미드 벽화와 파피루스 문헌에는 벌을 다루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데, 공통적으로 벌통 앞에서 연기를 피우는 모습이 등장한다. 벌은 후각이 예민하기 때문에 연기가 코를 자극하면 공격성을 잃고 무기력해진다. 동시에 연기는 벌이 방출하는 경계 페로몬을 무력화시켜 집단적 공격을 방지한다. 이집트인들은 주로 건초나 짚, 때로는 향료를 태워 연기를 냈는데, 이는 단순히 기능적 목적뿐 아니라 종교적 의미도 담겨 있었다. 향은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여겨졌고, 벌을 진정시키는 동시에 신성한 의례로 이어졌다. 즉, 이집트에서 연기는 실용과 제의가 결합된 퇴치법이었으며, 벌과 인간이 직접 충돌하지 않도록 만들어준 완충 장치였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물리적 격리와 보호 장치

그리스와 로마 농업 문헌에는 벌과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다양한 기술이 기록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게오르기카』에서 양봉가들이 꿀을 거둘 때 향신료나 올리브 잎을 태워 연기를 피우는 모습을 묘사했다. 그들은 꿀을 채취할 때 무장을 하듯 두꺼운 옷과 가죽 장갑, 두건을 착용했는데, 이는 당시 기술로 가능한 최선의 보호 장치였다. 로마 군인들이 전쟁에서 방패와 갑옷으로 몸을 지켰듯, 양봉가들은 벌을 상대할 때 방어적 장비를 사용했다. 그리스인들은 벌을 신성한 존재로 보았기에 무분별한 퇴치보다는 **“벌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벌의 쏘임을 불가피한 위험으로 인정하면서도, 인간이 기술적 수단으로 대응한 초창기 사례라 할 수 있다.


중세 유럽: 불과 물의 이중적 전략

중세 유럽의 수도원과 농가에서는 벌과의 관계가 생활의 일부였다. 꿀과 밀랍은 식품·약재·제사·양초 제작에 필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꿀을 채취하거나 벌집을 이동시킬 때 벌의 공격은 큰 문제였다. 이때 유럽인들은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사용했다. 하나는 고대 전통처럼 연기를 피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차가운 물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밤이나 새벽, 벌이 활동이 둔해졌을 때 물을 벌통이나 주변에 뿌리면 벌의 체온이 낮아져 움직임이 느려졌다. 이로써 공격성을 줄이고 작업을 쉽게 할 수 있었다. 불은 벌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는 도구였고, 물은 생리적 활동을 억제하는 장치였다. 이처럼 중세 유럽은 자연의 두 가지 요소인 불과 물을 활용해 벌과의 갈등을 관리했다.


동아시아: 소리와 향기의 전통적 힘

동아시아에서는 독특하게 ‘소리’와 ‘식물의 향기’를 이용한 퇴치법이 발달했다. 중국 농민들은 금속 그릇을 두드리거나 큰 북을 쳐서 진동을 내어 벌을 흩어지게 했으며, 한국 농촌에서는 가마솥 뚜껑을 두드려 벌의 접근을 막기도 했다. 벌은 진동과 소리에 민감해 이러한 자극을 회피하려는 습성이 있다. 또한 쑥을 태워 내는 연기는 해충뿐 아니라 벌을 쫓는 데도 쓰였으며, 마늘이나 파처럼 강한 향을 가진 식물도 퇴치 효과가 있다고 믿어졌다. 일본 농촌에서는 매실나무 잎을 말려 태운 연기가 벌을 진정시킨다고 전해졌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퇴치법은 경험적 생태 지식과 민속적 신념이 결합된 결과였다.


조선시대의 기록: 실용적 지혜와 민속 신앙의 결합

조선 후기 농서 『산림경제』와 『농가집성』에는 꿀을 채취하거나 벌집을 옮길 때의 요령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연기를 피우거나 재를 뿌려 벌을 흩어지게 하는 방법이 소개되었는데, 이는 벌을 죽이지 않고 안전하게 꿀을 얻으려는 실용적 접근이었다. 그러나 민속적으로는 부정한 기운이 벌을 자극한다는 믿음이 있어, 벌을 다루기 전 반드시 손과 몸을 씻거나 제사를 지내는 풍습도 있었다. 즉, 조선의 전통 퇴치법은 실질적 생존 기술과 상징적 의례가 공존하는 형태였으며, 이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단순한 이용이나 억제가 아닌 상호 존중의 틀 안에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아프리카 전통: 연기, 협동, 그리고 생태적 공진화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꿀 사냥이 전통적인 생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때 원주민들은 연기를 피워 벌을 쫓아내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특히 나무 껍질이나 풀을 태워 나온 연기를 이용했다. 흥미로운 점은 인간과 특정 새, 즉 꿀안내새(honeyguide) 사이의 관계다. 이 새는 특유의 울음소리로 인간을 벌집까지 안내하고, 인간이 꿀을 채취해 떠난 후 남은 밀랍을 먹는다. 벌을 퇴치하는 과정은 단순한 인간의 기술이 아니라 인간-동물-벌의 삼자 협동 구조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생태학적으로 매우 독특한 사례로, 퇴치법이 단순한 방제 기술을 넘어 자연과의 공진화를 반영한 행위였음을 보여준다.


근대 이후: 화학적 접근의 등장과 부작용

18세기까지 벌을 다루는 방식은 대체로 연기·물·소리 등 자연적 방법에 의존했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화학과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사람들은 벌을 제어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화학 물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황(硫黃)을 태워 나오는 강한 연기를 이용해 벌을 퇴치했는데, 이는 벌을 단시간에 기절시키거나 질식시킬 수 있었다. 이 방법은 벌을 빠르게 제압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많은 벌을 죽게 만들어 장기적으로는 양봉 생산성에 문제를 일으켰다. 이 시기부터 벌을 단순히 길들여 활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화학적 기술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뚜렷해졌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화학 퇴치법은 더욱 강력해졌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합성 살충제인 DDT(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가 개발되면서 벌뿐만 아니라 모기, 벼룩, 농업 해충까지 대규모로 제거할 수 있게 되었다. 양봉업자들은 벌집 주변의 말벌이나 다른 곤충을 제거하기 위해, 농업인들은 농작물 해충 방제를 위해 DDT를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DDT는 초기에는 “기적의 살충제”로 불렸으나, 시간이 흐르며 환경에 축적되고 생물 농축을 일으켜 생태계 전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것이 밝혀졌다. 이후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DDT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이 시기 벌 개체군은 이미 큰 타격을 입은 뒤였다.

20세기 후반에는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가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다. 이 물질은 곤충의 신경계를 교란해 죽게 만들었는데, 문제는 꿀벌이 직접 표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농작물 방제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노출되었다는 것이다. 네오니코티노이드 성분은 꽃가루와 꿀에도 잔류해 벌의 신경 기능을 손상시켰고, 이는 방향 감각 상실·군집 내 의사소통 실패·여왕벌 산란 저하 등으로 이어졌다. 결국 2000년대 초반부터 전 세계적으로 보고된 **꿀벌 군집 붕괴 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 CCD)**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었다. CCD는 일벌이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현상으로, 양봉 산업뿐 아니라 농업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화학적 접근은 단기적으로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벌통을 지키는 데 위협적인 말벌을 빠르게 제거하거나, 농업 해충으로부터 작물을 보호하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동시에 “벌도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꿀벌은 해충이 아니라 생태계의 필수적 수분 매개자였고, 인류 식량의 3분의 1이 꿀벌의 수분 활동에 의존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었다. 화학 퇴치가 단기적 안정을 제공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인류 스스로 식량 기반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살충제의 사용은 벌뿐 아니라 다른 곤충, 새, 심지어 인간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DDT와 네오니코티노이드의 장기적 축적은 수생 생태계와 토양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또한 꿀벌 집단의 감소는 다른 야생 곤충에게도 연쇄적 영향을 주었고, 이는 꽃가루받이의 다양성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화학적 퇴치는 단순히 벌과 인간의 관계 문제가 아니라, 생태계 전체를 교란하는 문제로 확대되었다.


벌과 공존을 위한 움직임

각국의 전통적 벌 퇴치법은 단순히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맺은 관계의 한 단면이었다. 연기, 물, 소리, 향기 같은 방법은 환경과 문화적 조건 속에서 발전한 생존 지혜였으며, 동시에 종교적 신념과 민속적 의례와도 깊게 연결되었다. 이러한 방법들은 벌을 죽이지 않고 쫓아내는 데 초점이 있었으며, 이는 곧 벌을 신성시하거나 유용한 동반자로 여겼던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현대 사회는 화학적 퇴치의 부작용을 경험한 뒤 다시금 전통적 지혜로 눈을 돌리고 있으며, 이는 생태적 균형과 인간-자연 공존의 관점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벌(BE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업에서 벌의 미래적 가치  (0) 2025.10.16
벌 개체 수 감소와 지구 생태 위기  (0) 2025.10.14
어린이 교육에서의 벌  (0) 2025.10.13
축제와 행사에서의 벌 상징  (0) 2025.10.13
벌들의 작은 무기 벌침  (0) 2025.10.11
속담과 관용어 속의 벌  (0) 2025.10.10
미술 회화에서 표현된 벌  (0) 2025.10.09
문학속에 표현된 벌  (0) 2025.10.08